티스토리 뷰

It

임진왜란의 발발과 그 영향

rkaclfakt 2023. 4. 16. 16:29

1. 임란전의 동아시아 정세


1) 명의 동요
 건국초 : 대내외적 안정 – 대내적 :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구축 – 대외적 : 주변국을 조공제도에 편입  16세기 :대내외적 불안 – 대내적 : 체제적 모순과 동요  환관과 권신(동림당)의 대립으로 왕권약화  지방에서의 반란 속출 – 대외적: 北虜南倭의 성장  북방민족(달단족)의 성장과 대립  遣明船의 단절로 왜구의 침입 급증, 통제 불가능

2) 만주의 형세  15세기 초반 : 野人女眞, 建州女眞, 海西女眞으로 분열 – 명과 조선의 통제로 세력 약화  16세기 초반 : 여진세력의 성장 – 조선 : 강경책에서 회유책으로 전환 – 명 : 대외통제력이 점차 약화됨  16세기 후반 : 건주위 출신의 누루하치가 주변 부족 통합 – 1601년 해서여진 정복 – 1616년 後金 건국, 스스로 황제에 즉위  1618년 위협을 느낀 명이 후금을 정벌하려다 대패 – 조선 군대(강홍립 등 13,000명) 후금에 투항 – 광해군의 양면정책, 후금과 사신교환, 정세 관망

3) 일본의 통일  대내적 : 織田信長, 豊臣秀吉 등이 戰國時代 통일 – 1568년: 織田信長 京都 입성(1차 통일), 가신의 배신으로 죽음 – 1582~1590년 : 豊臣秀吉 통일정권 수립  대외적 : 유럽인(포르투칼 등)과의 접촉 – 총 전래 : 九州 種子島 영주가 포르투칼 상인에게서 철포 구입, 제조법 습득 ⇒전술상의 변화, 신흥무장세력 성장 – 예수교 전래 : 봉건적 유교이념과 충돌  1549년 야소회 선교사가 가고시마에 전파  1582년 구주지역 신도 12만명, 小西行長  풍신수길의 조선침략 준비 – 1582년 반대파 제거, 85년 오오사카성 축조 – 1587년 九州정벌, 사카이, 하카다, 나가사키 등 무역항을 직할 지로 복속, 군자금 확보 – 1582년부터 16년동안 추진하였던 檢地실시 – 1587년 刀狩令 실시에 따른 무장해제 – 1591년 고다와라(小田原)정벌, 전국적 호구조사 단행, 전국 통 일, 조선출병 준비 본격화

4) 조선의 정세  대내적
– 주자학의 교조화, 개국공신세력의 귀족화로 내부 모순 노출 – 지배층 내부의 분열  사화 :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 붕당 : 사림의 분열  대외적 – 南倭北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함 –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 부족  일본의 국내정세에 대한 정보의 부족과 부정확  2세기 동안의 평화에 따른 안이한 자세  대일외교의 필요성 감소 : 소극적 외교

2. 일본의 침략

1) 초기전투의 패배 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  5월 2일 小西行長, 加藤淸正, 黑田長政 등 3로로 나누어 북 상하여 서울 진격  6월 13일 평양성 함락  개전 2달만에 3도(서울 개성 평양) 함락, 함경도까지 진격  임란초기 육전에서의 참패 원인 – 일본군에 대한 정보부족과 전쟁준비 부족 – 조총의 위력과 戰國時代 기간 중 잘 조직된 병력 – 군사편제상의 오류와 전술상 실수  일본군이 육전보다 수전에 능하다고 판단, 경상 전라도에 성 쌓 고 호 설치, 성을 낮게 쌓아 도움이 되지 못함  진관체제에서 제승방략체제로 전환  국지적 일시적 침입에는 효과적이지만 대규모의 전면전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방어체제

2) 의병의 봉기  4월 22일 곽재우(경상도 의령)가 처음 거병  전라도, 충청도에서도 고경명, 김천일, 조헌 등이 거병  의병장의 신분 – 문반출신의 전직관리나 지방의 유림 – 夷敵視하던 일본 침략과 만행에 대한 민족적 저항의식 표출  초기의 의병부대 召募義兵 주축(사병 모집 엄격히 금지)  5월말 의병장 격려 의병활동 활발, 관군과 동등한 지위 – 1593년 정월 : 의병 총수 22,600여명  의병의 역할 – 적군과 교전하여 큰 타격 줌(고경명, 김천일, 조헌 등) – 적의 후방 교란, 보급로 차단하여 진군속도 늦춤 – 이반된 인심을 돌이켜 전투에 참가하게 함 – 곡창지역인 호남지방을 보호 : 중요한 전략적 의의  전쟁 장기화로 경기, 황해, 평안, 함경도에서 의병 활동  僧兵의 전국적 봉기

3) 수군의 승리  개전초 경상좌우수영의 군사가 패한 이후 연전연승하여 전투의 상황을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 역할  1차전투 : 5월 4일 – 옥포해전 : 왜선 26척 – 합포, 적진포해전에서 40여척 격파  2차전투 : 5월말 6월초 – 사천, 당포해전등에서 왜선 70여척 격파  3차전투 : 7월 8일 – 한산도해전에서 70여척, 안골포해전에서 40여척 격파.  4차전투 : 9월초 부산포해전에서 왜선 100여척 격파  조선수군의 승리 원인 – ① 수군의 편제 정연 – ② 전선, 화포 등 무기의 성능 우수(거북선은 돌격선 역할) – ③ 이순신의 전략과 지휘능력

4) 반격전과 강화회담  의병봉기와 관군의 정비로 6월부터 전투 지속 – 10월 진주성전투, 이듬해 2월 행주대첩 등  명군의 참전으로 12월 평양성 탈환  일본군이 후퇴하고, 전쟁이 교착상태 유지  명과 일본간 강화회담 진행 – 황신이 일본에 통신사행으로 가는 등 외교교섭이 진행 – 명일간의 강화회의 결렬  1597년 일본군 재침(丁酉再亂) – 일본군 총수 14만여명 – 壬亂때와는 달리 경상, 전라, 충청도를 완전점령을 한 후 북 진하는 전략 취함 – 조선의 충실한 준비로 일본군은 충청도 직산까지 진격한 이 후 패배하여 후퇴를 거듭  1598년 8월 豊臣秀吉이 죽자 일본군 총퇴각 – 11월 18일 이순신의 노량해전 승리로 7년간의 전쟁 종식

https://itstory07.tistory.com/1154

로마 제국 멸망론

ⅩⅢ. 로마 제국 멸망론 ⅰ. 로마제국 멸망론 개론 1. 로마 제국 멸망 논쟁의 배경 ☞4세기~5세기경의 이교도의 공격과 이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응수, 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의 탄생 배

itstory07.tistory.com

3. 임진왜란의 영향

– 조선, 일본, 명을 비롯 동남아시아의 유구, 天竺, 태국 참전 : 동아시아의 전쟁
1) 조선의 영향
 정치, 군사적인 면 – 備邊司의 역할 강화 : 의정부의 기능 유명무실 – 군사기구의 개편 5위⇒ 5군영  훈련도감은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참고, 명의 절강병법 에 따라 삼수병제도 도입 운영 – 지방 : 속오군 창설 – 신무기의 개발 : 비격진천뢰, 화차 등  왜 조총과 서양식 대포인 불랑기포 등 소개
 경제적인 면 – 토지제도와 수취제도의 변모  임란후 토지면적 1/3로 감소(170만결 ⇒ 54만결)  조세수입 감소, 농민생활 황폐  量田사업의 전국적 실시  貢物의 米納化(大同法), 量田收稅의 간편  병역의 납세화(均役法)  환곡제도의 시행  문화, 사상적인 면 – 문화재(불국사, 경복궁 등)의 소실 – 일본에 대한 적대감정 심화 – 명에 대한 사대사상 강화(再造藩邦之恩)  德川幕府가 국교재개요청으로 국교 재개 – 조선 : 피로인의 쇄환 – 일본 : 대외적 안정, 무역상 이익의 필요성(대마도)

2) 일본의 영향  정권의 교체 – 豊臣秀吉과 西國지방의 大名 몰락, 德川家康 권력 장악 – 1600년 세키하가라전투에서 승리, 덕천막부 개설  문화재의 약탈과 문화적 성장 : ‘약탈전쟁’ – 6부 설치, 대규모로 조직적인 약탈  도서, 공예, 포로, 금속, 보물, 축부 – 도자기 : 도공 납치로 세계최대의 도자기 수출국으로 성장  심수관 : 정유재란때 남원에서 납치, 薩摩窯  이삼평 : 有田窯 – 주자학 : 조선의 유학서적과 포로를 통해 일본유학 발전  강항 :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퇴계유학을 전수  후지와라 세이카 : 德川幕府의 고문, 林羅山에게 계승  덕천막부는 주자학을 막부의 官學으로 지정 – 인쇄술 : 조선의 금속활자 20여만자 약탈  일본 인쇄문화와 도서문화 발달 토대

3) 중국의 영향  막대한 군사비용 지출로 재정 악화  만주에서 누루하치가 여진족 통합 강력한 국가로 성장  후금의 후신인 淸에게 멸망

4. 임진왜란의 제문제

1) 용어문제  한국 : 임진왜란, 정유재란(1597) – 조선시대 : 임진년의 왜적⇒ 임진왜란  도적떼가 침입해서 일으킨 변란, 적개심의 반영  일본군의 침입을 단순한 도적떼로 인식 – 선조실록 : 왜구가 이르렀다. – 선조수정실록: 왜구가 대거 침입하였다.  일본 : 文祿慶長의 役 – 江戶초기: 부정적 평가, ‘朝鮮役’ ‘朝鮮陳’ ‘高麗陳’ – 明治시대: ‘정의의 전쟁’ ’聖戰’ – 1910년대: 내선일체로 ‘文祿慶長의 役 ’ – 1930년대: 대동아공영권 구상, 임란 높이 평가  중국 : 조선을 도왔다는 사실 강조 – 임란 직후: ‘東援의 役’ ‘東事’ 萬曆東援의 役’ – 1970년대: ‘再造東國’(명의 역할 강조) 6,25(抗美援朝)  북한 : 임진조국전쟁

2) 임진왜란을 보는 시각  국난극복사의 시각 – 묘호의 변화 : 宣宗⇒宣祖, 멸망위기의 왕조를 구한 군주  임란 직후 의병활동을 소극적으로 평가: 선조의 통치문제 – 19세기 말: 극난극복의 사례로 임진왜란 제시  의병의 활동과 이순신의 업적이 재조명됨  전쟁사의 시각 : 승패의 유무 – 초기전투는 패배하였지만 평양성 전투 이후 승리하였다. – 침략의 목적을 달성하였는가의 여부로 판단  임란 후 사대교린관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승리하였다. – 승리 강조하면 조선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간과  노예전쟁의 시각: 20만명?을 붙잡아가 노예화 함  문화전쟁의 시각: 도공 붙잡아가 도자문화의 발달에 기여

3) 임진왜란의 발생원인

 豊臣秀吉의 개인적인 공명심과 영웅심(1960년대, 중촌 영효 등) – 豊臣秀吉이 불평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, 자신의 정 복욕을 채우기 위해 일으킴  일본의 국제무역(조선,명)에 관련된 해외발전(1980년대) – 중국중심의 동아시아 국제무역 활발 – 조선을 장악하여 중국과 직접 교역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늘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킴  일본의 봉건영주 특히 구주지방 大名의 세력을 약화시킬 의도 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(조공제도)에 대한 도전


4) 명군의 참전 문제
 명의 참전의도 – 조선이 정복당하면 중국도 안전하지 못하다. – 중국 본토보다는 조선을 전쟁터로 삼는 것이 낫다. – 평지인 요동보다 산지가 많은 조선에서 전쟁 하는 것이 좋다. – 조선에서 싸우면 군량과 군수물자를 조선에 요구할 수 있다. – 벽제관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일본과 협상을 서두른 이유는 중 국 본토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었다고 판단했기 때문  명의 참전의 영향 – 조선 내부문제에 사사건건 개입  명군의 횡포가 극심했지만 전쟁 후에 명군의 철수를 만류 – 명군이 없이 현재 지배체제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  세자책봉, 왕위계승에 관여, 막대한 은이 명에 유입 – 모화사상의 확산  명이 조선을 지켜 준 은인이다. ⇒사대주의⇒병자호란 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기존의 지배체제를 굳건히 유지

https://itstory07.tistory.com/1154

로마 제국 멸망론

ⅩⅢ. 로마 제국 멸망론 ⅰ. 로마제국 멸망론 개론 1. 로마 제국 멸망 논쟁의 배경 ☞4세기~5세기경의 이교도의 공격과 이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응수, 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의 탄생 배

itstory07.tistory.com

5) 이이의 십만양병설의 진위  내용 : 이이가 1583년 4월에 왜군의 침입 예견하고 10만 명의 군사를 기르자고 주장하였으나, 유성룡 등 대신이 평 화시에 군대를 기르는 것은 화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반대 하여 무산되었다.  이병도『조선사대관』(1948)『修補 조선사대관』(1964) 에 십만양병설 수록  근거 – 「율곡행장」(김장생:이이의 문인)  일찍이 경연에서 (율곡)이 청하기를 “10만의 군병을 미리 길러 위 급한 사태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.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지나 지 않아서 장차 土崩瓦解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” 라고 하자 정승 유성룡이 “사변이 없는데도 군병을 기르는 것은 화근을 기르는 것 입니다”라고 말하였다. 당시 오랫동안 태평이 계속되어 경연에 참 석한 신하들은 선생(율곡)의 말이 지나친 염려라고 여겼다. 선생 이 밖에 나와 유성룡에게 이르기를 “나라의 형세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속유들은 시무에 통달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는 기 대할 것이 없지만 그대 또한 어찌 그 말을 하는 가”라고 하였다. 임란 후에 유성룡에 조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“지금 보니 이율곡은 참으로 성인이다. 만약 그의 말을 채용했더라면 국사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”라고 하였다.
– 「 栗谷諡狀」(이정구) ,「율곡신도비명」(이항복) – 「율곡연보」(송시열) 김장생의 율곡행장 이용  선조 16년(1583) 4월에 10년후 침략 예언, 10만양병설 주장 – 『선조실록』율곡의 예언이 수록되지 않음. 『선조수정실록』은「율곡연보」와 달리 15년 9월로 기록  선조 15년 9월에 이이가 경연에서 “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하 여 뜻하지 않은 변란에 대비하여야 한다”고 하자 유성룡이 “군 사를 양성하는 것은 화단을 키우는 것이다”라고 하여 강력하게 반론하였다 / 김장생의 율곡행장을 토대로 편찬된 증거  『선조수정실록』에 실린 이유 – 선조실록의 객관성 문제(광해군 1- 2년 편찬) : 이항복, 기자헌(북 인)이 총재관이 되어 서인 폄하, 북인 칭송 – 선조수정실록 :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 잡고 편찬(선조 21- 효 종 8) / 친서인, 반북인, 반동인의 입장 서술 – 개인소장 史草와 비문, 행장, 잡기를 수집하여 수정
 야사: 이준경(1499-1572)이 임진왜란 예언 – 동서분당이 있기 4년전인 선조 4년(1571) 붕당을 예견

6) 김성일과 황윤길의 보고  1590년 3월 통신사(황윤길, 김성일, 허성) 파견 1591년 1월 귀국, 일본의 국내정세 및 풍신수길의 인물상 보고 – 황윤길 :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어 반드시 병화가 있 을 것이며, 풍신수길은 “안광이 빛나고 담략이 있어 보인다” – 김성일 :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았으며, 풍신수 길은 “눈이 쥐와 같아서 두려울 것이 없다” – 김성일의 주장에 따라 방비를 서두르는 것 중단  김성일이 황윤길과 다르게 보고 한 이유 – 동서붕당의 원인, 민심 흉흉할 것을 우려  김성일 – 임란 전 형조참의를 거쳐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재직 –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,서울로 소환 중 柳成龍 등의 상소 로 경상우도초유사에 임명 –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의병 모집, 관군과 의병 사이를 조화시 켜 전투력 강화에 노력 – 8월 경상좌도, 우도관찰사로 의병규합, 군량미확보에 주력 – 진주목사 김시민, 의병장들과 협력, 진주성 보전 – 1593년 도내 각 고을에게 왜군에 대한 항전 독려하다 병사

7) 이순신의 죽음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  ① 자살설 – 숙종대 이민서(1633~1688) 처음 제기  “김덕령이 죽고 난 후 여러 장수들이 스스로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. 곽재우는 마침내 군대를 해산하고 산속에 숨 어 죽음을 면하였으며, 이순신도 전쟁 중에 갑옷을 벗고 앞장서 나섬으로써 스스로 적의 탄환에 맞아 죽었다. 호남과 영남 등지 에서는 부자 형제들이 서로 의병이 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”  이민서는 이순신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음( 35년 후 출생)  무고하게 김덕령을 죽인 선조의 행위 비난하기 위해 자살설 제기 – 군사적 입장: 총사령관이 갑옷도 입지 않고 갑판 위에서 지휘 를 한 것은 자살행위다  ② 은둔설 - 자살한 것이 아니라 모처에 숨어 은둔하였다. – 19일 새벽, 공이 한참 독전을 하다가 탄환에 맞았다.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. 장남 회와 조카 완, 종 金伊 3인만 죽은 사실을 알았 다.(이분의 행장) – 총을 맞고 바로 죽었다는 사실에 의문제기  총사령관 주위에 부하들이 없었다.  아들 회, 조카 완 등이 함대를 지휘했는데도 알지 못했다. – 실제 함대를 지휘한 자는 송희립 등 이순신의 측근 장수
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장수가 총을 맞을 수 있겠는가. – 전라우수영 기록 : 대장선 90명, 이순신의 배 60명 군사 배치  두 설은 선조가 전쟁영웅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그들을 견제 하고 제거한 사실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에 불과 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선조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(失政)을 고려하여 전쟁영웅인 의병장 제거 : 이순신, 김덕령 제거, 곽 재우 생존  임란 이후의 논공행상 – 호성공신: 임금을 뒤따른 문신 86명 – 선무공신: 무공을 세운 무신 18명  1등 이순신, 권률, 원균 3명/ 2등 김시민 등 5명/ 3등 10명 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재평가  임진왜란에 대한 선조의 평가 – 일본군을 물리친 것은 조선의 의병이나 장수가 아니라 명의 구 원병이다. 자신의 실정에 대한 변명에 급급

8) 거북선에 대한 문제 ① 이순신이 발명한 것인가.  龜船에 대한 최초의 기록, 『태종실록』 13/2 갑인 – 임진나루에서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훈련 상황을 참관.  『선조수정실록』 25/5 경신 – 이순신은 전쟁에 앞서 전투 장비를 정비하면서 자신이 거북선 을 만들었다.  『광해군일기』14/7 병신 – 1622년 비변사에서 이순신이 만든 대로 거북선을 만들 것을 주 청하자 “광해군은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고 무기를 수리하고 사졸을 훈련시켜 변란에 대비한 것처럼 변란에 대비하기를 이 순신 같이 하라”고 명령  『인조실록』17/7 기사 – 1639년 최명길이 임금에게 “경기수사에게 거북선을 제조하여 시험해보도록 하려는데, 이것은 이순신이 만든 것입니다.”고 아 룀.  시대가 흐를수록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인식이 보편 화됨

② 거북선은 철갑선인가? 목선인가? – 『선조수정실록』 25년 5월 경신조  “거북선은 배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등 처럼 만들고,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, 나머지는 모두 칼, 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.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그 입은 대포구멍으로 활용되었다. 뒤 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고 그 고리 밑에 총구멍을 설치하였다. 좌우에도 총구멍이 여섯 개가 있었는데,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.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,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.” – 이순신 행록(李芬)에 같은 내용 수록  거북선은 철갑선이다. – 언더우드(연희전문 교수) 주장  한국선박사를 쓰면서 동료교수 정인보 말을 인용 “대원군이 거북선과 같은 철갑선을 만들었다”고 서술  본인은 판옥선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 – 문일평 : 철갑선이다  『征韓偉略』명치 이래 일본의 한반도 정벌기사에 근거  거북선이 철갑선이어서 일본의 화포가 해를 미칠 수 없었다 – 진단학회편, 『한국사』(근세전기), 을유문화사, 1962.  이상백: 거북선은 철갑선으로 세계의 선구가 된다
 板屋船에서 유래하였다 : 언더우드 – 판옥선은 조선수군의 주력 전선으로, 전기의 猛船에서 유래  맹선의 3종류 : 80명, 60명, 30명 승선 – 맹선과 판옥선의 차이 : 上粧의 유무  상장 :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설치한 후 기둥사이에 판자로 된 방패 부착, 적의 화살이나 총탄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 – 판옥선과 거북선의 기본구조 동일(김재근, 『조선왕조 수군 선 연구』, 일조각, 1977)  평탄한 갑판인가, 거북 등 모양의 둥근 갑판인가.  거북선의 재료 - 나무 – 『이충무공전서』 정조 19년(1795) 통제영구선(거북선)과 전라좌수영구선의 그림 수록  철이 아니라 나무를 잇대어 만든 배로 묘사 – 두꺼운 소나무 제조: 撞破法에 활용, 일본 배는 얇은 杉나무  나는 것처럼 빨랐다는 기록을 통해서 무동력선이기 때문에 가 벼운 나무 사용, 철은 불가(염기에 부식) – 槍船 : 1606년에 삼도도통사 이운룡이 거북선의 단점을 보완 하여 제조(『선조실록』39/12 무오)  거북선 단점은 승선인원이 많고 활쏘기에 불편하다.  개량거북선인 창선도 철갑선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으로 보아 판옥선, 거북선, 창선 모두 목선이었다.

'It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부동소수점 산술의 파이프라이닝  (0) 2023.04.18
부동소수점 곱셈 / 나눗셈  (0) 2023.04.17
역사란? 한국사  (0) 2023.04.15
배선기구(전멸기)  (0) 2023.04.14
배선기구 - 과전류보호기(자동 차단기)  (0) 2023.04.13
"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,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."
댓글
공지사항
최근에 올라온 글
최근에 달린 댓글
Total
Today
Yesterday
링크
«   2025/04   »
1 2 3 4 5
6 7 8 9 10 11 12
13 14 15 16 17 18 19
20 21 22 23 24 25 26
27 28 29 30
글 보관함